미국 최초의 흑인 마스터 증류자, 니어리스트 삼촌의 역사

|Benjamin Smith
Nearest Green Display

네이선 "엉클 니어리스트" 그린이 없었다면 미국의 위스키는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Uncle Nearest Whiskey) 라는 이름은 미국 최초의 흑인 증류주 장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잭 다니엘에게 위스키 제조법을 가르쳤고,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테네시 위스키에서 사용되는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Lincoln County Process)의 창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주류 브랜드 중 하나인 링컨 카운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헌은 최근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초기 생애와 증류 소개

네이선 그린의 삶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진도 없고 정확한 생년월일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1820년경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가 잭 다니엘을 만났을 당시 그린은 노예였습니다. 그는 랜디스 & 그린이라는 회사의 소유였는데, 회사는 그를 테네시주 린치버그의 루터교 설교자이자 증류업자인 다니엘 콜 목사에게 임대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은 그의 별명이었는데, 1880년 인구 조사에서 "Nearis"로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남북 전쟁 종전 후, 그린은 해방 선언 덕분에 자유인 신분으로 콜에서 계속 일했습니다. 다니엘은 결국 증류소를 인수하여 그린을 수석 증류자로 임명했습니다. 그린의 아들 두 명도 증류소에서 일했고, 그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잭 다니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잭 다니엘 사무실에 걸려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사진에는 다니엘이 흑인 증류소 직원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남자는 네이선 그린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잭 다니엘 웹사이트 에 따르면 그의 아들 조지 그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

그린의 증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위스키를 숙성 전 숯불에 구운 단풍나무를 통해 여과하는 독특한 방법인 링컨 카운티 공정(Lincoln County Process)을 개량한 것입니다. 이 기술은 위스키에 독특한 부드러움과 풍미를 부여하며, 테네시 위스키 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여겨집니다. 그린의 이 공정에 대한 탁월한 숙달은 업계의 기준을 정립했으며, 오늘날까지도 테네시 위스키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식품 역사가들은 링컨 카운티 프로세스가 실제로는 아프리카에서 유래되었으며, 노예화된 남녀가 미국으로 들여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물과 음식을 여과하고 정화하는 데 숯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지역만의 증류주 생산 전통이 있습니다. 니어리스트 그린 재단(Nearest Green Foundation) 에 따르면, 잭 다니엘의 조카들은 이 가설을 믿었고 브랜드를 담당하는 동안 신문에 이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잭 다니엘의 멘토십

재스퍼 "잭" 다니엘은 1849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는 10세 무렵 콜 목사에게 맡겨져 그의 증류소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린은 그곳에서 노예 노동을 했습니다. 1967년 전기 『 잭 다니엘의 유산』(Jack Daniel's Legacy) 에서는 콜 목사가 그린에게 증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지시하며 "니어리스트 삼촌은 내가 아는 최고의 위스키 제조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린과 그의 자녀들은 책 전반에 걸쳐 여러 번 언급됩니다.

잭 다니엘의 역사가 넬슨 에디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니엘과 그린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라 친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린은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일부에서는 그가 다니엘의 음악적 열정을 북돋아 주었다고 평가합니다. 네이선 그린은 1890년경 사망했으며, 그의 묘소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잭 다니엘은 이후 회사를 조카 렘 모틀로우에게 물려주고 1911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네이선 그린이 마침내 마땅한 대가를 치르다

테네시주 린치버그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네이선 그린이 잭 다니엘 브랜드에 기여한 바는 한 세기가 넘게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잭 다니엘의 공식적인 입장은 댄 콜에게서 위스키 제조법을 배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모회사인 브라운-포먼이 잭 다니엘 테네시 위스키 출시에 그린이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제 잭 다니엘 증류소 투어를 통해 소개됩니다. 2021년에는 증류소의 배럴 하우스 114호가 네이선 그린의 아들과 그린 가문을 기리기 위해 "조지 그린 배럴 하우스"로 개명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 기사 " 잭 다니엘, 노예의 도움에 숨겨진 재료를 받아들이다 "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 폰 위버는 니어리스트 그린 재단과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 브랜드를 설립했습니다. 이 재단은 그린의 유산을 기리고 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립니다. 잭 다니엘의 유산을 재발매했는데, 그린 가족을 두드러지게 소개하고, 그의 후손들을 위한 대학 장학금을 마련했습니다.

삼촌 가장 가까운 위스키

2017년, 폰 위버는 엉클 니어리스트 프리미엄 위스키(Uncle Nearest Premium Whiskey)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이름을 딴 최초의 브랜드였습니다. 테네시안(The Tennessean) 신문에 따르면, 이 브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위스키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흑인 소유 증류주 브랜드입니다. 니어리스트 그린 증류소(Nearest Green Distillery)는 2019년 테네시주 셸비빌에 문을 열었으며, 현재 엉클 니어리스트 1884 스몰 배치 위스키, 엉클 니어리스트 1856 프리미엄 에이지드 위스키, 엉클 니어리스트 라이(Uncle Nearest Rye) 등 다양한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엉클 니어리스트 위스키의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네이선 그린의 고손녀인 빅토리아 이디 버틀러의 참여입니다. 버틀러는 브랜드의 마스터 블렌더로 활동하며 미국 위스키 최초의 흑인 여성 마스터 블렌더라는 역사를 썼습니다. 그녀의 지도 아래 엉클 니어리스트는 수많은 상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네이선 그린의 유산

2019년 테네시 주 의회는 네이선 그린을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마스터 디스틸러로 공식 인정했습니다. 한때 거의 잊혔던 그의 이야기는 미국 위스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흑인 미국인들의 간과되었던 공헌을 조명합니다.

사진은 Jack Daniel's Tennessee Whiskey, Uncle Nearest Premium Whiskey, Pierre Auguste에서 제공되었습니다.

댓글 1개

About time the truth came out ,I’ve been knowing this for year’s..

Michael Spi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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